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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에서 비롯된 인정이 가져다주는 효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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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상을 모른다면 안개가 걷히지 않는 상태는 한없이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자신의 마음에 탐욕, 분노, 망상 중 어느 쪽이 존재하는
지를 관찰해봅시다. 욕심이 움직이고 이다’, ‘분노를 느끼고 있
다’, ‘이것은 망상이다.’라는 식으로 말이지요. 어떤 때는 세 가지
모두에 해당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만 해도 안개 속을 것
는 느낌이 사라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때 여러분이 실천할
고인 것이 본래의 불교, 즉 마음을 정화하는 수행입니다.
탐욕, 분노, 망상은 예로부터 인간의 삼대 번뇌로 여겨졌으니
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불교는 이런 번뇌늘 경계하라고
습니다. 그러나 붓다가 살던 당시에는 이것들이 마음 상
를 경계하라고 설명해 너희가 마음 상태를 이
해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붓다’란 올바른 이해의 궁극에 도달한 사람이라는 의미이니
다. 깨달음을 얻은 자’ 또는 각 성자’라고도 불리지요. 이 대목은
불교에 흥미가 없는 사람에게도 중요한 사항이라고 꼭 전해들
리고 싶습니다. 올바른 이해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
촉입니다. 자기만의 견해나 사고방식으로 이해하는 것 또한 아닌
내다. 오히려 반대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라는 판단이나 해석, 사안에 대한 견해를 일체 배제하는 것을 말합니다.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객관적으로, 즉 주관을 배제한 중립적인’ 시선에서 매사를 제대로 바라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올바른 이해에 반응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저 바라볼 뿐인
내다. 동요하지 않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가만히 바라볼 뿐
입니다. 그렇게 철저하게 깨끗한 마음으로 나와 상대방, 그리고 세상을 이해하는 것을 올바른 이해라고 표현합니다. 올바른 이해야말로 괴로움을 뛰어넘는 길이라는 것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가요?
올바른 이해를 깨친 사람인 붓다가 도달한 경지를 가리켜 ‘해
탈’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음내다. 여기서 해탈은 자유, 해방이
라는 의미입니다. 불교, 즉 붓다의 가르침이란 올바른 이해에 따
라 인간이 고뇌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방법을 정리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종교가 아닙니다. 이 책에서 붓다의 가르침을 합리적인 사고법’이라고 부르는 데는 명백한 이유가 있습니다.
올바른 이해를 통해 사람은 자유로운 마음을 되찾을 수 있습
니다. 꼭 실천해서 내 안에 존재하는 원인 모를 결핍감을 해소할
고 이만하면 충분하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충만한 삶을 되찾아
보는 것은 어떨까요?
모든 고뇌는 바라는 마음에 의해 생긴다.
고로 그대는 바른길을 따름의로써 바라는 마음을 내려놓도록 하라.
그리고 두 번 다시 바라는 마음에 사로잡혀 괴로움 가득한 인생
으로 돌아오지 마라.
고 상대하기 어렵다’라는 인물평 역시 판단입니다.
만, 우울, 걱정 등 많은 고민을 만들어냅니다….
다입니다. 이런 판단은 본
만약 헛된 판단을 하지 않는다면 마음은 한결 개
으아 한결 개운하고 기
어질 것입니다. 또한 인생이 경쾌하고 수월할
하고 수월하게 흘러갈
수 있겠지요. 여기서부터는 헛된 판단에서 자유로워질 때,
가 삶에서 어떤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지 살펴보도록 합시다.
인생은 온갖 판단으로 가득 차 있다.
판단이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구속하고 있는지 지금 한번 돼
돌아볼까요?
예를 들어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점을 보는 것
을 좋아해서 매사를 운세가 좋고 나쁨으로 판단합니다. 소문을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고 ‘저 사람은 이런 사람인 것 같다’라며 자질구레한 부분까지 파고듭니다. 사람과 만났다가 헤어진 뒤에는 꼭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좋은지 싫은지를 평가하려 듭니다.
또 자신이 반드시 옳다고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남의 의견을 전혀 들으려 하지 않고 자기주장만 하는 사람이지요. 그뿐 아니라 다른 사람이 자신의 의견에 반론을 내놓으면 발끈하는 사람
도 있습니다. 부모든 상시든 주위에 민폐만 끼치는 친구든 간에, 이런 사람이 여러분 주변에도 있지는 않나요? |
판단은 자신의 성격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래야 한다’라는 맹신
은 결벽증이나 완벽주의, 지나치게 노력하는 성격을 만들어낸
내다. ‘나는 안 되는 인간이다’라며 스스로 자기부정의 딱지를
붙이기도 합니다. 어차피 실패할 것이 분명해’, ‘나에게는 그만
큼의 능력이 없어’라고 혼자서 결론을 내리는 예도 있습니다.
이것들이 모두 판단입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들의 인생이 얼마나 판단에 지배당하고 이
는 지 알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지나치게 판단하는
마음이 존재합니다.
깨달은 자는 다른 이의 견해, 의견, 지식이나 결정에 구애받지 안
는다.
그는 좋고 나쁨을 판단하지 않는다.
판단 때문에 마음을 더럽히지 않는다.
마음을 더럽히는 원인도 만들지 않는다.
붓다는 바른길만을 말한다.
그의 가르침을 따르면 ‘나는 이렇다’라는 자의식으로부터 자유로
울 수 있다.
아는 척을 하면 기분이 조은 이유
어째서 사람은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 심지어 인생의 목적이
나 삶의 의미까지 이리저리 판단하고 싶어 하는 걸까요?
한 가지 이유는 판단하는 것 자체가 기분 좋기 때문입니다. 좋
고 나쁨이나 맞고 틀림이라는 판단만으로도 자신이 그 일에 대
해 모든 것을 파악했다는 착각에 빠집니다. 이미 결론이 난 것 같아 안심하게 되는 것이지요. 어쩌면 이런 느낌은 여기에 먹인 감이 있다’, ‘여기에는 적이 많다’와 같이, 수렵·채집 시대에 필요했던 상황 판단의 유전자, 말하자면 본능과 같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유는 판단하면 다른 이에게 인정받은
기부가 들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와 싸우고 나서 ‘그
사람은 이걸 잘못했어.’, 그 사람이 그랬으니까 이렇게 된 거야
새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하고 그것참 이상하네. 네가 틀린 게 아닌데’라는 .
보증을 받으려고 하는 예도 있습니다. 이는 ‘역시….
어’라고 생각하기 위한 행동입니다. 인정욕구늘 채우기 위한 파
단을 바라고 있는 것이지요. 즉 판단하는 마음의 깊은 곳에는 민
든 것을 파악했다는 착각에서 비롯되는 기분 좋음’과 인정,
아는 척을 하면 기분이 좋은 이유
를 차
어째서 사람은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 심지어 인생의 모
나 삶의 의미까지 이리저리 판단하고 싶어 하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