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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과 경찰의 관계방식에 대한 사례

그는 갑자기 테이블에 준비해둔 커다란 카레 냄비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서 “확 다 뒤집어 버릴까 보다!”라고 소리쳤습니다.

저는 그 사람 앞으로 걸어갔습니다. 그는 저에게 눈을 부르리 며 소리를 버럭 질렀습니다. 이

“어이, 스님! 지금 나한테 시비라도 걸겠다는 거야?”

“자, 이야기나 한번 해봐요”라고 저는 미소를 띠고 그에게 말

을 걸었습니다.

“당신네가 해주는 급식 말이야. 너무 위선적이지 않아?”

“위선일지도 모르겠군요.” |

“이따위 걸로 당신네가 대체 뭘 할 수 있다는 거야?” “아무것도 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요.”

저는 절대 상대방을 부정하지 않고, 그저 이해하고자 노력해

습니다. 그러는 사이 함께 일하는 직원의 신고로 경차 했습니다.

고로 경찰들이 도착

“누가 경찰 불렀어!” 남자는 화가 나서 경찰들에게도

경찰들에게도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잠시 실랑이를 벌였지만 역시 경에

는 당해낼 수 없었습니다. 그는 팔을 붙들린 채 경찰서로 연행돼

섰습니다.

그때 저는 그 사람과 경찰들 사이에 서서 이야기를 듣고 있어

습니다. 발걸음을 옮기려던 그는 가만히 저를 바라보더니 이런 게 말했습니다. “우리 엄마 말이야……. 교도소에 있어.” 우락부락한 그의 가느다란 눈에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렇군요. 면회는 가보셨나요?” “아니” 떨리는 목소리로 그가 말했습니다.

“편지라도 보내보셨나요?”라고 묻자 그는 “까막눈이 뭔 글씨를 써”라며 소리 높여 흐느꼈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써드리겠습니다. 오늘 경찰서에서 돌 나오면 같이 써보는 게 어떨까요?” “써준다고?”라고 온순한 얼굴로 물었습니다. “하지만 뭐라고 쓰면 좋을지 모르겠어”라며 다시 훌쩍였습니다. “낳아주셔서 감사하다고 쓰면 좋겠지요. 기다리고 있을 테니 같이 써봅시다.”

리자 그는 얌전히 경찰서로 연행되었습니다.

너희 무사히 재회했습니다. 듣자 하니 중학교도 나

지 못해 글자를 전혀 쓸 줄 모른다고 하더군요. 어머니와 아바

두 고달픈 삶을 살고 있는지, 벌써 20년 가까이 만나지 못

했다고 합니다.

그는 폭력단의 아래도급 비슷한 일로 하루 벌이를 하고, 술로 적

함을 달래며 피폐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한밤중까지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날 이후 우리는 친구가 되었지요. |

그와 처음 대면했을 때 만약 제가 분노나 적의라는 감정으로 반응했다면 결과는 어땠을까요? 아마도 그의 진심 어린 눈물은 결코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지금도 그는 이따금 저에게 연락을 주는데, 지금까지 연결고리가 유지되고 있는 것은 역시 그때 붓

다가 가르쳐준 반응하기 전에 잠시 이해하라’라는 태도를 관철해

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살다 보면 벅차고 귀찮은 상대방과 만날 때가 있습내다. 다 만 만일 이쪽에서 상대방과 똑같은 반응을 돌려주면 상대방의

반응에 응수하는 셈이 됩니다. 이때 상대방에게 지지 않는 것이

나 자기주장을 끝까지 고집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반응 함으로써 자신의 마음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

니다.

나도 모르게 반응하는 상황에 부닥쳤을 때일수록 크게 숨을 들

시켰다가 내뱉고, 각오를 다지면서 상대방을 그저 이해하기 이 해 노력해봐야 합니다. 그리고 마음의 반쪽을 내 안의 반응을 들 여다 보는 데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는 절대 쉽지 않은 연습입니다. 그러나 내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 그리고 상대방과 서로 더 잘 이해할 가능성 때문에라도 필요한 일입니다.

마음의 반쪽은 상대방에 대한 이해에, 나머지 반쪽은 내 마음 안쪽의 반응을 알아차리는 데 사용해보세요. 그리고 이를 상대방을 마주하는 방식의 원칙으로 삼는다면 좋겠습니다.

불편한 사람과 수월하게 관계 맺는 법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는 마음가짐’을 이해했다면, 다음으로

는 상대방과의 관계를 어떻게 이어갈지 살펴봅시다.

‘관계 방식’이란 어떤 마음을 상대방에게 향하게 할 것인지를

뜻합니다. 앞서 말한 사고법을 실천하면, 자신의 마음을 파악할

는 것은 물론 상대방에게 어떤 마음을 향하게 할지를 확립함의

로써 인간관계에 시달리지 않는 삶이 가능해집니다.

상대방을 판단하지 않는다.

멎어 상대방과의 관계 방식에서 알아야 할 원리 원칙을 제

해봅시다.

상대방을 판단하지 않는다.
과거는 잊는다.
상대방을 새로운 사람이라고 여긴다.
서로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관계의 목적을 살핀다.

상대방을 판단하지 않는 것은 앞서 배운 ‘먼저 판단하지 않는

다’는 원칙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서 부정적 감정이 솟아났을 때, 우리는 상대방을 함

부로 판단하려 듭니다. 정말 싫은 사람이다’ 돼지기름인지 ‘정말 제멋대로인 사람이다’ 돼지기름인지 그 사람에게 질려버렸다.’, 매사에의 욕도 없고, 항상 똑같은 말만 반복해서 지겹다’, ‘이제 안 보는 것밖에는 수가 없다’라며 상대방과의 관계에 대해 이것저것 결론을 내리고 싶어 합니다.

물론 그런 판단에 일리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누가 봐

도 어리석은 사람은 존재하는 법이니까요.

마 이런 판단은 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나요? ?柳.

코며 판단은 항상 자신의 인정욕구, 즉 ‘만’과 이어져 있기 때문

이다. 상대방의 약점을 지적하고 ‘아, 곤란하네’라는 탄식을

함으로써 자신이 옳다고 확인하거나 상대방에게 우월감을 느낄

여 하지는 않았는지요.

마음속 깊은 곳을 주시하면서, 될 수 있으면 깨끗한 마음을 지

키려는 불교적인 삶의 태도에 비춰본다면 하지 않아도 될 판단

은 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살아가면서 마음에 고민을 쌓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어떤 큰 행복도 고민을 만들어내는 마음의 반응 때문에 엉망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스스로 괴로움에 속박되게 만드는, 상대방에 대한

판단도 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상대방을 떠올리며 그 사람은

이래서 안 돼’ 돼지기름인지 그런 성격으로는 분명 고생할 게 틀림없

어’라고 계속 판단하는 것은 스스로에게도 손해일 수밖에 없음

내다.

물론 상대방에게 미안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 상태가 이어

지게 되면, 상대방과 서로 이해할 가능성도 줄어들 때

문이지요. 지금은 어려워 보일지도 모르지만 서로 이해할 날이

올 가능성은 항상 남겨져 있는 법입니다. 그러나 만약 상대방에

대한 판단, 단죄, 결론을 계속해서 내린다면 그 기

다며 그 가능성을 죽이는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