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목적을 확인하려 하지 않고 그저 자신
의 기대, 의도, 형편, 요구, 과거에 집착하면 자신이 옳고 상대방
은 틀렸다는 생각에서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여기에서도 붓다가 말했던 집착이야말로 괴로움을 낳는다’
는 깨달음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단지 말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
내다. 서로 괴롭히고 있다는 사실을 실제로 느끼면서 눈을 떠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다시 생각하기 바랍니다.
‘우리는 서로 괴롭히기 위해 관계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서로
이해하고 행복해지기 위해 관계하고 있다.
경우가 있습니다. 관계의 목적을 확인하려 하지 않고 그저 자신
의 기대, 의도, 형편, 요구, 과거에 집착하면 자신이 옳고 상대방
은 틀렸다는 생각에서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여기에서도 붓다가 말했던 집착이야말로 괴로움을 낳는다’
는 깨달음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단지 말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
내다. 서로 괴롭히고 있다는 사실을 실제로 느끼면서 눈을 떠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다시 생각하기 바랍니다.
‘우리는 서로 괴롭히기 위해 관계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서로
이해하고 행복해지기 위해 관계하고 있다.
일상을 즐겁게 만드는 감정의 원칙.
감정에는 또 하나 중요한 원칙이 있습니다. 바로 쾌를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사람은 모두 행복해지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과연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행복과 불행은 쾌와 불쾌라는 마음 상태에 따라 정의할 수 있습니다. 쾌주, 즉 기쁨이나 즐거움을 느끼는 마음 상태가 행복입니다. 불쾌, 즉 분노나 공포, 결핍감이나 불안 등을 느끼는 마음 상태가 불행입니다.
불교에서만 그렇게 보는 것은 아닙니다. 원시 생물 중에는 먹은 때(쾌)와 위험에 맞닥뜨렸을 때(불쾌) 각각 다른 색깔의 빔을 내는 생물이 있다고 합니다. 고등생물의 경우는 분비되는
둥근 문이 달라집니다. 즉, 생물은 전반적으로 ‘쾌인가 불쾌인가?’
라는 반응의 세계를 살아가고 있다고 볼 수 있지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순수한 감정을 가진 어린아이
는 기분이 좋으면 웃고 기분이 나쁘면 웁니다. 결국 쾌와
불쾌라는 반응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참고로 불교에서는 쾌
늘 즐거움[樂], 불쾌를 괴로움[]으로 표현합니다. 불고불락不苦不
樂이라는 말도 있지요. 이 말은 쾌나 불쾌 어느 쪽도 아닌 상태를 뜻합니다.
다만 쾌도 아니고 불쾌도 아닌 상태는 인간에게 불쾌나 다름
없습니다. 욕심에 사로잡힌 인간에게는 어느 쪽도 아닌 상태는 지루함, 즉 불쾌가 됩니다. 인간의 마음 상태는 양자택일입니다. 우리들의 인생은 쾌와 불쾌 두 가지 상태를 오가면서 나아가 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생활 규칙을 정해보면 어떨까요? |
‘행복해지고 싶다면 쾌의 반응을 소중히 여기자. 불행해지고
싶지 않다면 불쾌한 반응을 하지 않도록 노력하자.’
욕심을 좇아도 괜찮을까?
그렇다면 쾌의 반응을 소중히 여긴다는 것은 구체적으노 이
떤 것일까요?
생물은 욕구가 채워졌을 때 쾌를 느낍니다. 따라서 있는 그대
로 욕구를 부정하지 않고 채워주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
인 셈입니다.
예를 들면 먹고 싶은 것은 맛있게 먹고 쾌적한 잠을 자고
가족과 즐겁게 지내고 취미나 오락 등 오감의 쾌락을 소중히 여
깁니다. 맛있고, 즐겁고. 이런 기분 좋은 순간에 적극적으로 반
응하기로 마음먹습니다. 이렇게 설명하면 ‘불교는 금욕을 장려
하는 엄격한 종교 아닌가?’라고 의아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음을 깨끗이 하는 수행에 매진해 궁극의 평온함, 즉 마음의 반
녹말죽 소멸한 ‘열반’이라는 경지에 도달하고자 한다면 쾌나 불쾌
늘 포함해 일체의 반응을 해서는 안 됩니다. 분명 불교에는 그런
엄격한 면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런 경지를 지향하는 것이 모든 사람의 공통적인 목
표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우리들의 공통 목표는 한 사람 한 사
럼이 괴로움에서 벗어나 각자의 행복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그
방향에 비춰 생각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요구에 사로잡혀 불쾌감을 느끼는 모습과 쾌를 소중히 여기
여기는 모습으로 나뉩니다.
요구를 살아 있는 에너지로 바꾸어 쾌를 느끼는 삶의 태도들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헛된 욕구에 손을 뻗었다.
가 그 욕구에 휘둘리며 불쾌를 떠안는 삶의 태도는 불합리한 것 이지요.
사람은 누구든지 행복하게 살고 싶은 법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자신이 쾌를 느끼는지 불쾌감을 느끼는지를 잘 관찰해보세요. 만약 불쾌감을 느꼈다면 마음의 반응을 처음으로 되돌려보면 됩니다.
솔직하게 느끼려고 노력한다면 늘 마음이 신선하다.
마음의 반응은 당사자의 마음가짐에 따라 강해지기도 하고
약해지기도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매일 쾌를 소중히 여기면서
즐거울 때는 ‘즐겁다!’, 기분 좋을 때는 ‘기분 좋다!’고 솔직하게 느끼려 노력한다면, 좀 더 확실하고 선명하게 쾌를 느낄 수 있게 됩니다. 행복도 마찬가지로 마음먹기에 따라 커질 수 있습니다.
저 또한 수행승으로서 매일 제대로 느끼고자 하는 마음가짐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전신의 감각, 발바닥의 감각, 그리고 들
숨과 날숨 등 온몸 구석구석에 의식을 두루 미치게 만드는 것이지요. 그렇게 하면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언제나 마음을 신선하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
쾌를 늘리고 불쾌를 줄여보세요. 그렇게 쾌적한 인생을 만들 어가세요.
그렇다면 애초에 우리가 항상 마음속에 품고
한 무엇일까요?
이소에 품고 있는 ‘고민’ 이
• 사는 데 쫓겨 항상 마음에 여유가 없다.
• 지금 하는 일이 만족스럽지 않다.
• 미래를 생각하면 불안하다.
새로 바꾸게 이 중 제일의
• 끔찍한 일, 불행한 사고, 실패가 거듭되어 침울하다.
있을 때도 마음은 나 침울함, 앞날 후회 등 ‘고민이
고민의 시작 나도 모르게 들의 근원’ 입니다. 는 방법을 생
헛되이 뽀뽀세요. 쓸 나지 않습 하지 않게
• 성격이 맞지 않는 사람이 있어 스트레스를 받는다.
언뜻 보면 모든 문제가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들어 보이고 해
결하는 데 꽤 시간이 걸려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감을 너희는 않습니다. 이 모든 고민은 바로 마음의 반응’에서 비롯됩니다. 마음의 반응이라는 말을 듣고 그것이 무엇인지 단번에 감을 잡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그렇지만 사실 우리들의 일상은 마음의 반응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만큼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