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사회가 바라본 유토피아로 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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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따라서 선이 되기도 하고 악
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칠 정은 인의의 동반자이자 적이다….
인간의 길로 가려면 인의의 적인 칠 정을 다스려야 한다. 칠 정을 다스리고
인의를 권장하려면 그에 맞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 인간은 불완전 존재자
이기에 도달해야 할 목표가 필요하다. 이 범위를 넘어서도 안 되고 모자라
도 안 되는 준거, 이게 바로 예 禮이다.
옷감을 치수에 맞춰 재단하듯 인간도 예에 따라 또 하나의 본성인 욕심 즉
칠 정을 다스려야 한다. 그래야만 모두가 잘사는 대동 사회 大同 社會를 이룰 수
있다. 지금도 자주 사용하는 대동단결이란 말도 「예운 편에 나온다. 동양
에서 바라본 유토피아 utopia는 대동 사회다. 잠시 공자가 말하는 이상사회를 들어보자.
대도 大道가 행해진 것과 하은 주 삼대의 현자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기
록은 남아 있다. 이를 보면 대도가 행해져 천하는 개인의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것이 되었다. 현명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관리노 발탁해 서로 신뢰
하고 화합하는 사회로 만들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아버지만 아버지
로 받들지 않았고 자기 자식만 자식으로 여기지 않았다. 어른은 늘 일자리
가 있었고 어린아이도 늘 보살핌을 받았다. 과부와 홀아비, 고아와 장애인
을 긍휼히 여겨 너나없이 봉양했고 성인 남자는 저마다 직분이 있었고 여
인은 좋은 지아비를 맞이했다. 재화는 헛되이 쓰지 않았고 한 사람이 독점
하지 않았으며 일하는 사람은 그 일을 자기만을 위해서 쓰지 않았다. 이러
기에 사리사욕과 모략이 없어졌고 절도나 폭력이 사라졌다.
인의는 잠새된 것으로
재된 것으로 개발해야 한다. 그래서 칠 정은 불학이능不學而能이라
아야 하는 것이다.
의지 않고도 할 수 있고, 인의는 강수 修라 하여 배우고 닦
인의가 잠재된 것이라는 주자의 .
기되 그것이라는 주장은 후대에 여러 가지 논쟁을 불러온다. 대표
– A며 두 가지로 분류된다. 하나는 인의는 아주 작은 설마,
기로 내 속에 잠재되어 있어 그것을 적극적으로 개발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이편에 속한다. 다른 하나는 인의가 사람에게 온전
하게 내재해 있으니 그것을 드러내기만 하면 된다는 뜻이다. 정도의 차
이는 있지만, 퇴계 이황 선생이나 율곡 이이 선생이 모두 이 계열에 속한다.
이 논쟁은 조선조에 특히 심화하는데 인의라는 것이 꼭 사람에게만 있느냐
아니면 동물에게도 있느냐는 ‘인물 성동이’ 人物性同異 논쟁까지로 발전한다.
이는 인의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정도 즉 어짊과 옮음보다 의미가 훨씬
크기 때문이다. 우주의 구성 원리 혹은 우주의 질서와 거의 동격으로 의미
가 확장된다. 그래서 인의는 진정한 인간의 길이 된다. 인의가 인간이 인간 이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라면 그 방해 요소가 바로 칠 정이다. 칠 정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인간으로 가느냐 아니면 금수로 추락하느냐로 갈라진
실정 자체가 악이냐 그렇지 않으냐 하는 의견은 분분하다. 칠 정을
다. 물론 칠 정 자체가 악이냐 그러
사단칠정은 성리학 性理學의 철학적 개념, 는 네 가지 도덕적인 마음으로 남을 불쌍히 ‘ 는 수오지심 羞惡之心, 남에게 양보할 한다. 칠 정은 인간의 자연적인 일곱 가 랑愛, 미움, 욕망 欲 등이다.
학 性理學의 철학적 개념 가운데 하나이다.
“나는 자살을 천하에서 제이
이 아니라면 천하의 가장 흉한 일이 돼.
을 천하에서 제일 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의에 합당한 가살
한 일인데도 수령들은 그이
초하의 가장 흉한 일이 될 뿐이다. 이렇게 천하에서 가장 흥
이나 손자들까지도 부여의
데도 수령들은 그 일을 치하하고 부역을 면제해주는가 하며 아들
가들까지도 부역을 감해주고 있다. 이는 천하에서 가장 흉한 일을
글 배상에 권하는 것이니, 어찌 옳다고 할 수 있겠는가. (중략) 신
와 모발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므로 감히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 부모
가 아무리 위독한 병에 걸렸다 하더라도 자식의 몸을 해하면서 그 고기를 먹고 싶어 할 리가 있겠는가? 인육을 먹는 것은 어린 석은 백성의 어리석
은 생각일 뿐이다.”
남편을 따라 죽는 부인에게 열부라 미화하고 단지를 은연중에 강요하는
사회에 던진 다산의 일침이다. 이러한 단지와 할 고는 다산도 지적했듯 효
의 바이블 Bible 인 『효경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효경의 총론인 「개종 명의
장을 살펴보자.
| 효는 인간 덕성의 근본이며 교화는 모두 이를 바탕으로 한다. 여기에 안
알아. 내가 너에게 말해주겠다. 몸과 사지, 머리카락과 피부는 모두 부모로
터 받은 것이다. 그것을 감히 상하지 않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효의 시
이 세우고 立身 인간의 바른길을 걷는 것, 그렇게 하여 이

우세에 떨쳐 名 부모님을 영예롭게 만드는 것, 이것이 효의 종착이
어려서부터 부모님을 섬기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사회에 나가
다. 효는 어려서부터 부모님
늘 섬기는 것의로 확대되어 결국은 자기 몸을 반듯이 세우는 것
서는 임금을 섬기는 것으로
으로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