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욕구로 벌어지는 상황판단의 유전자의 갈림길

한 가지 이유는 판단하는 것 자체가 기분 조기 때문입니다. 좋
고 나쁨이나 맞고 틀림이라는 판단만으로도 자신이 그 일에 대
해 모든 것을 파악했다는 착각에 빠집니다. 이미 결론이 난 것
같아 안심하게 되는 것이지요. 어쩌면 이런 느낌은 여기에 먹인
감이 있다’, ‘여기에는 적이 많다’와 같이, 수렵·채집 시대에 필
필요로 했던 상황 판단의 유전자, 말하자면 본능과 같은 것인지도 모
듭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유는 판단하면 다른 이에게 인정받은
기분이 들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와 싸우고 나서 그
사람은 이걸 잘못했어.’, ‘그 사람이 그랬으니까 이렇게 된 거야
라고 되새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하고 그것참 이상하네. 네가 틀린 게 아닌데’라는 제삼자의
보증을 받으려고 하는 예도 있습니다. 이는 ‘역시 내가 옳았어’라고 생각하기 위한 행동입니다.

인정욕구늘 채우기 위한 판단을 바라고 있는 것이지요.

즉 판단하는 마음의 깊은 곳에는 모를 채우기 위해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행동에서 얻어지는 쾌록’이 있습니다.

따라서 모두 판단하는 데 열중하게 됩니다.
판단은 때때로 맹독이 된다.
판단이 단지 자신의 기분을 좋게 만들기 위한 것일 뿐이라면
별문제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에 너무 집착할
게 되면 자기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도 심한 고통을 받게 됩니다.
어느 날 어떤 어머니에게 이런 상담을 받았습니다.
“딸이 공부를 안 해서 큰일이에요. 어떻게 해야 공부 좀 하게
될까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딸을 최고의 명문 대학에 보내기
위해 스파르타식 교육으로 유명한 에스컬레이터식 진학 학교
에 보냈다고 합니다. 늦은 밤까지 교실에서 자습을 시키고 성적
에 따라 수학여행의 목적지조차 바뀌는, 철저하게 성적 중심의
노 운영되는 학교였습니다. 어머니는 딸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
음에 그 학교에 보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내심 과거에 자신
이 수험에 실패했으니까 딸의 인생으로 만회하고 싶다는 미련
이 있는 모양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딸에게 있어 기묘한 존재였습니다. 딸을 대할 때 사
소한 일로 흥분하는 일이 잦았습니다. 평소에는 딸이 명문 대학
진학률이 높은 학교에 다니는 것을 자랑스러워해
맛깔스러워 했지만, 어떤 날
은 너 같은 게 어차피 합격할 리 없어’라며 모순된 막은
그순된 말을 쏟아내
습니다. 또 어떤 날은 갑자기 ‘너 때문에 서럽다’라며 훌써
면에서 술을 마시는 등 딸 처지에서 보면 왜 이렇게까지 자시 이
격을 부정해야 하는지, 왜 이렇게 어머니가 공부를 강요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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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윽고 딸은 자신이 왜 이 집에
있는지, 무엇 때문에 살아가고 있는지를 고민하기 시작하더니
점차 정서 불안 상태에 빠졌습니다. 그런 나날이 계속되던 중학
교 2학년 어느 가을밤, 딸은 욕실에서 손목을 칼날로 긋고 말아
습니다. 다행히도 딸은 목숨을 건졌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
사건 후에도 딸에게 신랄한 태도로 일관했고, 공부를 강요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해야 딸이 공부 좀 하게 될까 봐
요?”라고 저에게 상담하러 온 것도 그 사건 후의 일이었습니다.
딸은 그 뒤로 자해는 하지 않았지만 자퇴했고, 결국 대학에도 진학하지 않았습내다.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이런 사례는 드물지 않습니다. 어렸을 때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던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혹시 여러
니다.
분도 지금 부모로서 자녀에게 똑같은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인
집착이 고이면 괴로움이 되듯이
불교에서는 사람이 품은 괴로움과 고민이 있는 그대로 바라
보고자 합니다.
앞서 소개한 사례에서도 처음부터 어머니가 잘못했다고 판단
하려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전에 어머니의 마음에 어떤 원인
이 있었을지, 어떻게 생각해야 그 괴로움을 없앨 수 있을지를 이
해하려 했습니다.
어머니의 경우, 자신이 명문 대학에 가지 못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좌절감과 결핍감이 괴로움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명문 대학에 가지 못했으니 자신은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판단할
고인 것입니다. 어머니 또한 판단의 희생양이라고 할 수 이
갰지요. 그런 판단이 자신에 대한 분노를 낳는 것입니다. 갑자기
우울해지거나 딸에게 엉뚱하게 화풀이하는 것의 원인도 바로
판단에 있습니다. 명문 대학에 가고 싶었다는 바람, 가지 못했다.
는 판단이 집착되어 자신과 딸을 괴롭히는 것입니다.
| 사람이 괴로움을 느낀다면 그 마음속에는 반드시 집착이 이
습니다. 마음은 계속해서 졸졸 흐르는 실개천과 같아서, 괴로움
을 남기지 않을 작정이었더라도 어느새 집착이 고여 괴로움을
낳게 됩니다.
자기 자신이든 상대방이든 누군가가 괴로워한다면 뭐가…….
된 것입니다. ‘이대로는 안 된다’라고 현실에 눈을 뜨기 바랍니다.
붓다의 사고법에 비춰 이렇게 한번 생각해봅시다.
이루지 못했던 과거의 바람이 괴로움을 낳는다.
틀림없이 성공해야 했는데, 실패하고 말았다는 판단이 괴로움
을 낳는다.
상대방을 향한 기대와 요구가 괴로움을 낳는다.
이런 집착들을 떼어놓지 않으면 자신도 상대방도 계속 괴로울 수밖에 없다.
없는 것을 있다고 착각하지 않으려면
단정 짓기, 선입견, 일방적인 기대와 요구 같은 판단은 일종의 집착입니다. 속된 말로 하면 마음의 병’이라고 할 수 있지요.
| 사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런 판단이 처음부터 머릿속에 조
제했던 건 아닙니다. 분명 부모님이나 선생님, 친구들, 세상에 넘쳐나는 정보를 통해 ‘이렇게 해야만 해’라는 판단 방식을 확 습한 것입니다. 분명 일이나 생활, 장래의 선택 등에서 판단이 필요한 경우는
있습니다. 결론을 정함으로써 마음이 잘 예측되는 예도 있지 요. 그러나 어떤 판단이 든 집착하면 괴로움이 생겨나게 되니
다. 현실은 항상 무상, 즉 변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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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바람을 이루지 못한 경험이 있다면, 그 바람은 이제 존
제하지 않는 망상입니다. 집착하고 있으므로 아직도 보이는
것 같지만 실상은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 ‘이래야만 한다’라는 자기 인생이나 상대방에 대한 기대도 그저
판단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망상이기 때
문입니다. 망상에 불과한 판단에 집착해서 여전히 자기 자신이
나 상대방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 바로 진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