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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 가르치는 전도의 진짜 의미는?

인제 그만 자유로워지고 싶지 않나요? 본래 없는 것을 있다고 생각하는 심리를 불교에서는 ‘전도’라고 합니다. 바로 착각하는
것을 말하지요.
누군가를 괴롭히고 있는 ‘이렇게 해야 한다’라는 판단과 기대는 착각입니다. 착각은 없애는 수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눈앞의 현실을 중심에 두고 잘 이해하도록 노력해서 처음부터 모두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생활을 만드는 것이 옳습니다.
판단은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것
앞서 판단은 머릿속에만 존재하기 때문에 망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좀 놀라울 수도 있지만 진실입니다.
‘뭐야, 판단이라는 것이 고작 망상에 불과했던 건가!’라고 얼
든 알아차리길 바랍니다. 마치 호랑이 그림자에 겁내고 있었던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지요. 올바른 이해는 마음의 어둠을 걷어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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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망상을 떼어놓기가 어려워요. 아무리 해도 떼어놓을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괴로워하고 있지요. 이렇게 말하는 사람
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도 그 심정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다만 그럴수록 마음을 청소하는 방법을 실천해야 합니다. 이 때로는 괴롭다. 나는 좀 더 편해지고 싶다’라는 바람을 갖고 새로운 삶을 시작해봅시다.
삶에는 괴로움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그렇지만 제거할 수 있습니다. 분명 제거하는 방법은 있습니다.
괴로움을 낳는 판단을 떼어놓기로 하고 그 방법을 실천
해야 합니다. 사람은 계속 괴로움에 빠져 있기보다는 괴로움에 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과거도 판단도 전부 멀리 떼어놓아 봅시다. 그리고 편안해집시다.
지나친 긍정도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
사람을 괴롭히는 판단에는 ‘자기는 훌륭하다’, ‘옳다’, ‘뛰어나
다며 지나치게 긍정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이런 심
리를 만만’이라고 부릅니다.
‘만’에 빠지면 잠깐은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집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비롯된 교만, 오
만, 자부심, 우월감과 같은 생각은 결국 불만이나 자만으로 인한 실패를 초래하고 스스로 손해를 입히게 됩니다. 사실은 자기 자신도 다른 사람도 모두 판단하지 않는 것이 가
자 좋습니다. 그렇게 하면 마음을 기쁨과 만족 등 다른 감정에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솔직하고 편한 모습의 자아를 찾을
수 있는 것이지요.
‘나는 어떻고, 그는 어떻고’라는 생각은 마음에 꽂힌 화살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알아차리지 못한다.
올바르게 바라보는 자에게 괴로움을 반복하게 만드는 자의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정말로 도움이 되는 일인지 분별하기
‘만 ‘이란 말하자면 자신의 가치에 집착하는 마음입니다. 사실
오만이나 자존심, 허영심, 심지어는 열등감이나 자신감이 없다.
는 생각도 난 데 해당합니다. 사람은 모두 마음속 어딘가에서 자
신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판단이 옳은 것인지는 대체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에 대해 붓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어떤 말을 한다면 그것은 상대방에게 이익이 될 때다.
진실이며 상대방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말은,
때로는 상대방이 좋아하지 않을 만한 것이라도
필요하다면 말해줘야 한다.
결국 ‘진실인가’, ‘상대에게 도움이 되는가’가 중요합니다. 세
상에는 진실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하지만 유익
함은 어떤 분야든지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됩니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라면 이익이 오르고 그것이 일하기 좋은
환경으로 이어지고, 업무를 원활하게 돌아가게 만드는 것이 올바른 판단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도움이 되는가’의 관점입니다.
그렇다면 평소 우리들의 판단은 어떻게 이루어질까요? 나, 다른 사람, 인생, 일 등에 대해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이라는 판단은 진실을 중심에 두어야 할까요? 아니면 유익함의 관점에서 파악해야 할까요?
우선 머릿속에서만 펼쳐 놓는 판단은 그저 망상이기 때문에
진실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현실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유가
한 것도 아닙니다.
다시 말해 인간이 생각하는 대부분의 판단은 진실도 아니고
유익하지도 않습니다. 말하자면 시간 보내기에 불과하지요. 그
헌데도 그런 판단을 하는 이유는 앞서 설명한 대로 판단자
체가 기분 좋고 그로 인해 인정욕구가 채워지기 때문입니다. 이제 각기 ‘코끼리란 이런 것이다’라고 주장하며 “네가 틀리
고 서로 치고받고 싸우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와이 ,
게 웃었다.
이 에피소드는 시각장애에 대한 차별을 담고 있는 느낌이 들
어서 개인적으로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장애를 전생의 업보 탓
이라고 여기는 구시대적 세계관의 흔적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
요. 다만 이 일화에서 한 가지 본질을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이
결국 인간이란 애초에 처한 상황이나 바라보는 시각이 전혀 달라 일부밖에 보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모든 것을 이해했다는 착각에 빠져 스스로 옳다고 믿는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관계할 때는 반드시 견해의 차이가 생길 수박
에 없습니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경
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머릿속에서 ‘아무리 생각해도’라는 생각
이든 이상, 자기 생각 안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사실 자기
머릿속에서 자기 생각밖에 나오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니
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생각이 옳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생각의 전제, 즉 사람들이 가진 입장도 경험도 모두 다르기 때문입니다.
붓다의 가르침은 어떤 판단도 개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상념, 즉 감독으로 치면 망상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도 자
무심코 판단하는 습관에서 벗어난다.
판단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편안한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지혜라는 사실을 이해했다면, 실천으로 옮겨봅시다. 이제
부 터 헛된 판단에서 자유로워지는 방법을 소개하려 합니다.
먼저 간단하게 말로써 판단을 알아차리는 방법이 있습니다. ‘앗, 판단했다’라는 알아차림의 말이 바로 그것입니다. 오늘은 일진이 사납다.’, ‘실수했나?’, ‘저 사람은 어렵고 불편해’, 나는 안 되는 인간이야’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갈 때는 ‘앗, 판단했다’라고 알아차리기 바랍니다.
스스로 누군가가 좋은지 싫은지, 상대방이 괜찮은 사람인지
나쁠 사람인지를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앗, 또 판단
하고 있다’라고 인식해봅시다.
흔히 친구나 가족끼리 대화할 때 누군가의 인물평’을 하는 경
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서로 “뭐 개인적인 생각이지만”이라
는 알아차림의 말을 덧붙이면 좋습니다. 괜찮은 사람이라고 판
단하 는 것도 안 되는 건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
듭니다. 단정해서 말할 수는 없지만, 긍정적인 판단도 상황이 달
큰 크기면 부정적인 판단으로 바뀌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애초
에 우리에게 누군가를 괜찮은 사람, 나쁜 사람이라고 판단할
자격이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