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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이 판단의 집합체가 된 이유는?

아마 붓다라면 냉정하게 그것은 불필요한 판
단이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나는 나라고 생각한다.
판단은 마음의 버릇과 같습니다. 세상에는 비교하는 것, 평가
하는 것, 여기저기 파고들기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떠도는 소문은 판단의 집합체입니다. ‘모두가 판단하는데 나라
고 안 될 것 없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자신도 판단을 정말 좋아
하는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나 앞서 그런 쓸데없는 판단이
야마로 괴로움을 낳는 원인이라는 점을 설명했습니다.
만약 진정으로 더는 고민이 늘어나지 않기를 바라
기 앞 기를 바란다면 판단
에서 손을 떼는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매사에 이
것 판단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더는 괴로워지고 싶지 않기 때문에,
불리 판단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그런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
한다’라고 타인과 나 사이에 확실하게 선을 긋는 것이 중요합니다.
‘남은 남이고 나는 나다’라고 명백한 경계선을 긋습니다. 이
마음가짐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분명 세상에는 판단하기
늘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나도 똑같이 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신의 마음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입니다.
항상 자유롭게 독립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만이 헛된 반응
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차라리 솔직해진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솔직해지는 것입니다. 그리며 다 내가 가장 편해집니다.
자신이 훌륭하고 옳다고 믿는 ‘만’이 굳어지면 나와 그 들 사이에 벽이 생깁니다. 그로 인해 사람들과 소통하는 이
– ‘많이 굳어지면 나와 주위 사람
라들과 소통하는 일이 어
H 내의 집니다. 또한 다른 의견을 접하면 내가 부정당하는 거
부이 듭니다. 그 때문에 울컥하거나 침울해지고 마음속에 고민
이 쌓이는 것이지요. 이런 괴로움이 생기는 것은 주변에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옳다고 하는 선입견이 원인입니다. 만에 사로잡힌 사람
에게 자신이 옳다는 생각을 떼어놓으란 말은 자신을 부정하라
는 말이나 다름없는 것이기에 자살행위와 같습니다. 따라서 사
럼은 좀처럼 솔직해질 수 없습니다.
이럴 때 방향상을 본다는 차원에서 불교를 활용해봅시다. 방 향성을 본다는 것은 불교에서 ‘올바른 사고’라고 불리는 가르침의 한 가지 요소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는 것을 말합니다. 계속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고 싶은지, 옳고 그름에 구애받
지 않는 솔직한 자신을 지향하고 싶은지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옳다는 생각 따위는 그야말로 사소한 자기만족에 불과합니다. 그런 생각은 누구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합니다. 자신
이 옳다고 고집부리는 모습보다 솔직한 모습이 매력적입니다.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이해심 넘치고, 마음을 터놓을 수 이
는 대화 상대가 되는 편이 더 행복합니다.
솔직해지면 모두가 행복해질 수 이습니다.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낸다고 무시당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그런 나의 진솔함
을 존중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 가장 편해집니다. 지
어떤 순간에도 나를 부정하지 않는다.
살다 보면 일이든 인간관계는 실패했다고 생각하게 되는 일이
반드시 생깁니다. 중요한 것은 거기서 기죽지 말아야 한다는 점
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자기를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판단이라는 마음의 반응은 성가신 법인지라 금세 나
에 대한 평가가 깎였을지도 몰라’, ‘나는 이 일이랑 안 맞나 봐’,
‘역시 난 안 되는 인간이야’라며 자신을 책망하게 만들지요. 이
어떤 사람은 콤플렉스나 좌절감에 빠지고 심지어는 살아 있
을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며 극단적으로 생각하는 때도 있음
내다. 요즘 시대에는 많은 사람이 자기를 부정하는
자기를 부정하는 탓에 괴로
움에 빠집니다. 자신을 부정하는 판단을 극복하고 가히
그 보하고 강한 마음을
만드는 법을 배워봅시다.
분노를 만들어내는 것은 나 자신이다.
지금부터 자기를 부정하는 판단이 가져다주는 괴로움을 이해해 봅시다.
자신을 부정하면 인정욕구가 채워지지 않아 분노가 생겨나니
다. 분노는 본인에게 불쾌한 반응이므로 그런 상태를 해소하고 싶어 공격이나 도피를 선택하게 되지요. 이 두 가지는 생물이라면 모두 지닌 본능적인 반응입니다.
공격은 다음과 같은 행동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성을 잃고
나 호통을 치고, 남이 싫어하는 행동으로 상대방을 공격해 기분
을 전환합니다. 또는 스스로 책망하고 미워하고, 나쁜 자신을 단죄하고 죽고 싶다고까지 생각하며 자신을 공격합니다.
도피는 다음과 같은 형태로 나타납니다. 마음의 반응을 무시하고 게으름피우기도 하고 대충하고 툭하면 쉬려 하고 아무도 없는 곳에 틀어박히려 듭니다. 그저 잠만 자거나 우울해하고 자
극과 쾌락에 의존하는 때도 있습니다. 부정적인 반응이 일어나면, 자기 자신도 주위 사람들도 이상
시던 게든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다만 주의해야 할
고 이 어떻게든 벗어나야 해’라는 생각 또한 본인을 부정하는
판단이라는 점입니다. 즉 분노가 생겨나는 것이지요. 분노
너희 다시 새로운 공격이나 도피라는 반응을 만듭니다. 이렇게 돼
면 악순환에 빠지게 됩니다. 불교에서는 어떤 상황이든 분노를
만들어내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웁니다. 분노와 같은 부정적인
‘마음의 반응’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상황에 부닥치더라
도 판단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구2
자유로운 마음을 되찾는 연습
그렇다면 자기 자신과 상대방을 판단하거나 부정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
.
사람은 판단하지 않는 것에 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속성을 부정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한
내다. 사실 이 내용을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더라도 머릿속에서는
‘역시 어떻게든 해야 해’라고 자꾸 판단하게 되는 법입니다.
어떤 사람은 작은 실수 하나만으로도 주변에 얼굴을 들 수가
없다” ‘나쁜 소문이 돌면 어쩌지 하면서 헛된 망상과 판단에 극성팬
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상대방의 말이나 표정, 대수로
14 표정, 대수롭지 않은 시
선에서 본인이 그런 부정적인 판단을 느끼는 것이지요.
부정적인 판단을 만들어낸 것이 자신인지 주위 사람인지는 조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단 하나만 실천하면 됩니다. 바로 부정적인 교
단을 그만두는 훈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