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물치지로 세상의 이치를 아는 방법

이전보다 더 좋게 해주겠다는 것인데, 뱀은 하나님의 명령을
숙고 홀은 천리를 거스르고 만다. 천지창조가 7일에 완성되고, 혼돈
멍을 7개를 뚫어주는 것은 우연이라 쳐도, 두 이야기의 메시지는 자태로부터의 일탈 혹은 거스름이다.
다. 천 리를 거역한 대가치
미르재단 거역한 대가치곤 가혹하다. 포장해 우와 혼돈을 통해 장자가 우
에게 하고 싶은 말은 하나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하늘의 이치가 있으 그 길을 따르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혼돈과 같이 된다는 경고이다.
이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 순리이고 그것이 곧 자연의 질서다. 맹자 너희 물이 동으로 가든 서로 가든 그 방향이 정해진 것은 없지만,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 물의 성질이라고 했다. 노자는 물을 도에 가깝다고 하면서, 뭇사람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처하면서 만물을 이롭게 한다고 했다. 굳이 맹자나 노자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물의 성질이 어떤지 우리는 매일 목격한다.
그러나 사람이 욕심을 부려 흐르는 강을 막으면 어떻게 될까. 물줄기를 시
논평 둑으로 막고 강바닥을 긁어내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장자는 말한다.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들어라, 마음으로 듣지 말고 기회로 들어라. 양생 養生의 길이 진정으로 잘사는 길이다. 양생이란 바르게 살면서 행복하게 사는 길이다.
주희와 왕양명, 지식을 얻는 두 가지 방법
격물치지 格物致知 세상의 이치를 연구하여 앎에 이르다.
집안도 다스리지 못하는 놈이 정치하겠다고? 선거철만 되면 들려오는
소리다. 서구 문명이 들어와 맹위를 떨치는 21세기에도 이 말은 한국 사회
에서 힘을 갖는다. 한국 사람의 의식에 사서삼경 四書三經이라는 유교 텍스트
가 그만큼 강하게 자리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조선은 역사에서 퉤
장했지만, 성리학은 여전히 우리 의식 밑바닥에 유유히 흐르고 있다. 이
사서는 『논어』, 『맹자』, 『대학』, 『중용」이고, 삼경은 『시경』, 시
을 가리킨다. 『논어』와 『맹자』, 『시경, 『서경은 독립된 텍스트로 아무리
나라 초기에는 성립한 문헌이지만 『대학』과 『중용』은 사정
이 좀 다르다. 줄여 학용 學이라 부르는 이 두 책은 원래는 『예기』
확인 소대예기小戴禮記라 부른다 – 한 장 chanter였다. 『성경」과 「마가목
음의 관계를 이해하면 쉽다.
사에서 송나라에 이그면, 수나라와 당나라 시기에 유행했던 불학의 르 극복하고자 유학을 중심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건설하려는 시도 한발 해진다. 조선을 개국할 때 불교를 배척하고 국가 이데올로기로 유로 채택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 결과 성리학이라는 새로운 핵 문제
계가 탄생한다. 성리학을 신유학이라고 하는데 이는 원시 유학을 새로운 구조로 설명했기에 新’자 늘 덧붙였다. 고대 유학의 텍스트를 새로운 관점에서 해석하는 과정에서 『예기』에 포함
된 『대학』 예기의 42편이 단행본으로 떨어져 나오게 된다. 처음 이런 시도를
한 사람은 우리에게 『자치통감』의 저자로 잘 알려진 사마 광 1019-1086이다. 사마광은 『대학』을 단행본으로 만들면서 『대학 광의』라는 주석서를 쓴
네 이 책은 불행하게도 현존하지 않는다. 다만, 그가 쓴 소논문 「지치재 격
물론 만 전해온다.
사마광은 철학자가 아니고 사학자였기에 사상체계를 세우지 못했지만, 사
간구를 계승한 주희 1130~1200은 보다 적극적으로 신유학의 새로운
을 제창한다. 주희는 사마광의 『자치통감을 엄밀한 춘추필법 春秋
패러다임을 제창한다. 주희는
1 “자치통감강목』을 짓고, 사마광이 주창한 명분론, 예
筆法으로 간략화시켜 『자치통감강목』을 그
지사 상, 관리가 지켜야 할 도덕 등을 계승한다. |
– 주희도 『대학』 단행본을 만들었는데, 이때 주희는 옛
사마광과 마찬가지로 주희도
아는 차원에 그치지 않고 원 테스트 『예기와는 다르게 체제를
것을 계승하는 차원에 그지
등을 새롭게 편집한다. 그래서 『예기 속의 『대학과 주희가
개편하고 내용을 새롭게 편집 만든 『대학』은 다른 책이다.
이다. 그는 ‘격’을 ‘정’이라고 푼다. 후자는 주희가 여기에 속
0
는 격’을 ‘지’ 至라고 해석한다. 두 사람의 해석이 달라진 근본이 너희 격자보다 물자에 있다. ‘물’은 인간이 사는 이 세계의 물리적 조건
과 인간이 만든 역사적 시
이 만든 역사적 산물까지 포함한다. 문제는 이 ‘물을 어떻게 바라
보느냐 하는 것이다. 왔양명은 물 物을 바르게’라고 해석했는데 그 이유는 이 물이 바르지 않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바르지 않은 ‘물’에 내 마음이 오염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희는 이와 반대이다. 내 마음이 아직 완전하지 않기에 내 마음을 바르게
할 외부의 참된 기준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는 참된 표준에 이르러야 한다.
[至고 주장했다. 바로 여기서 내 마음의 깨달음을 중시하는 양명학 心 學과 객관적 이치로 내면의 도덕성을 확립하려는 이학 理學이 갈라진다. 정리하면, 왕양명은 격물을 만물 세계를 바르게 하다’로 해석했지만, 주희
는 만물의 이치에 이르다’로 보았다. 마음의 학문인 왕양명의 양명학과 이
치의 학문인 주희의 주자학은 그러나 전혀 다르면서도 닮은 점이 있다. 심
에 이학의 요소가 없는 것이 아니고 이학에 양명학의 요소가 없는 것이 아
너기 때문이다.
T당, 세계가 모두 그릇되었는데 내 마음만 옳을 ᅮ ᄂ.
그는 되었는데 내 마음만 옳을 수 있는가, 또는 내 마음 가 바르다고 해서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하는 질
이 옳지 못한데 세계가 바르다고 해서 그것을 꼬마쌍살벌
세계와 나는 모두 변화의 가능성을 가지기에 그 궁극은 하나
문이 남는다. 세계와 나는 모두
노 만난다는 것이 옳은 해석이다.
데 양명학은 마음을 긍정하는 부정하는 마음에 관한 공부에 기준
의에 관한 공부에 치중하게 되고,
이하으 외부의 객관적 질서나 경전을 중시하는 경향으로 흐르게 된다. 이
부의 객관적 질서 중에 가장 확실하게 와 닿는 것이 성인이 남긴 경전이기 때문이다. 성글게 정리하면 양명학은 자율, 시학은 타율로 흐르게 된다.
조선 성리학은 후대로 가면 갈수록 주자를 절대 맹신하여 극단적 추앙을 이
사게 되는데 이는 이학이 가진 기본적 특성과 무관하지 않다. 노로의 여수
엮던 송시열의 일화를 보면 사고의 경직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때는 효종 4년, 1653년 음력 7월 21일이었다. 송시열과 유계, 윤선거는 충청도 강경의 황산서원에 모이기로 했다. 송시열은 충남 연기에서 배를 타
고 백마강을 따라 내려가 유계를 방문했다. 인근 여러 사람을 초청해 뱃놀
이하면서 시도 짓고 술도 마시며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사건은 그날 밤에 일어났다. 송시열 일행은 황산서원의 재실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저녁 술자리에서 당대 송시열의 맞수였던 윤휴의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그의 학문 성격을 어떻게 볼 것인가가 주제였는데, 송시 열은 윤휴가 주자의 경전 해석에 반기를 든 이단이라 못을 박았다. 윤휴는
송시열만큼이나 주자학에 정통한 사람이었다. 또 정통했기 때문에 주자 해
석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윤휴의 학설은 곧 성리학의 발전인 셈이다.
그는 단지 경전의 해석에서 주자와는 다른 주장을 내세웠을 따름이다. 문
제는 송시열의 경직된 주자 옹호였다. 송시열은 동석한 윤선거에게 윤휴
이단이라면서 계속 그와 관계를 끊으라고 다그쳤다. 그러나 윤선 거는 그
마음이 없었다. 그날 밤 송시열은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윤휴는 이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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