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정치도 아름답다.
선양禪讓 요임금이 왕위를 물려준다.
권력은 자식과도 나눌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권력의 속성을 강조하려고 종
종사용 하는 이 격언은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몇 배는 더 위험한
말이다. 권력이 사유화될 때 인류는 늘 불행했다. 나치가 그랬고,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진 독재가 그랬고, 지금 북한이 그렇다. 반대로 권력을 시민과 공유할 때, 더 정확히 말하면 권력이 덕과 인으로 시민을 위했을 때 인류는 늘 행복했다. 이 사실을 증언하는 아름다운 정치가 먼 옛날에
존재했다. 인구에 회자하는 요순시대가 전형이다.
천리건곤千里乾坤 태평 시의 도덕 높은 우리 성군, 강구연월 康 連月 동요 등
던 요임금 성덕이라. 거여로 상사뒤요. 순임금 높은 성덕으로 내신 성기 性器
해온 역사가 사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이 나라 유적이 발견되자 그보다 앞선 요순시대도 신화가 아니라 사실일
것이라는 주장이 힘을 받기 시작했다. 중국 땅덩어리가 워낙 크고 역사
가 유구해서 언제 어디서 무엇이 발굴될지 모르는 마당에 제아무리 이름난 역사가와 고고학자도 섣불리 요순 이야기를 신화라고 주장하기가 조
심다워졌다.
요순시대는 『서경』에 처음 등장한다. 『서경』은 공자가 요임금과 순임금 때
부 터 주나라 BC 1046~BC 256에 이르기까지 약 2천 년의 정사를 수집하여 편 친한 책으로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경전이다. 훗날 사마천은 『서경』의 이
야기를 바탕으로 황하강 중류 지역을 직접 답사해 요순 이야기를 『사기』
에 자세히 기록하였다. 그 내용이 『사기』의 「어제 본 게」에 담겨 있다. 우리
가 아는 요순시대의 모습은 주로 여기에서 나온다. 그 밖에도 제자백가의
책 속에 요순의 이야기는 무수히 나오지만, 이 두 책이 가장 오래되었고 신
빙상도 높다.
『서경』과 『사기』는 사실을 기록한 역사서이기에 여타 책과 성격이 다르다.
물론 역사란 해석의 역사이기에 아무리 객관적으로 서술했다 해도 그 안에는 저자만의 고유한 시각이 배어 있기 마련이다. 그나마 이 두 책이 다른 책에 비해 역사적 사실을 충실하게 기록하고 있는 편이다. 요순이 성군이라 추앙받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선양이라는 위대한 전 통을 세웠기 때문이다. 선양이란 천자가 살아 있는 동안 왕위를 자식이 아닌 사람에게 물려주는 것을 말한다. 임금과 성이 같더라도 자식이 아니라면, 예를 들어 동생이나 조카에게 물려주었더라도 선양이라고 했으나 실제
임금의 뜻 따르게 된다….
요임금은 만면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생전에 많은 업적을 쌓았지만, 요임금은 마지막으로 후세를 위해 꼭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었다. 바로 후계자 문제였다. 하루는 요임금이 신하들을 불러 놓고 의견을 물었다. 이
여러분이 보기에 내 뒤를 이를 사람으로 누가 좋다고 생각하시오?”
신하 방제가 나서서 아뢰었다.
“임금의 장자 단주가 좋겠습니다.”
적장자가 대권을 물려받는 것이 옳다는 이야기였다. 그러자 요는 이렇게
말했다. “아! 그놈은 덕이 없고 싸움을 좋아하니 쓸 수가 없소!”
그러자 신하 중 누군가 돈이라는 사람을 추천했다. 요는 신하의 추천을 박
안 들어 돈을 등용하였다. 돈은 후에 하나라를 창업하는 우임금의 아버지의
다. 요는 돈에 큰 벼슬을 내리고 9년을 지켜보았지만 뚜렷한 업적을 세
오지 못했다. 요의 고민은 깊어갔다. 자신이 늙어가는 것도 근심이었지만 무엇보다 나라의 앞일이 걱정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요임금은 하는 수 없이 신하들에게 다른 사람을 천거하라고 명령한다. 이때 모든 사람이 입을 모아 추천한 사람이 순이다. “순은 시각장애인의 아들입니다. 아비는 도덕을 전혀 모르고 어미는 남을 잘 허허 뜯고 동생은 교만합니다. 그러나 순은 효성을 다함으로써 그들과 화목하게 지낼 뿐만 아니라 그들을 점점 착하게 변화시켜 다시는 나쁜 일을 하지
“어떻게 된 거야? 형이 걱정돼서 얼마나 마음을 졸였다고!”
“그랬었구나. 내 착한 동생이 형을 이처럼 생각해주는구나.”
그 후로도 순은 더욱 정중하게 아버지와 계모를 섬기고 동생을 아꼈다. 그
러자 부모와 동생이 차츰 변하기 시작했다.
요는 순에 딸을 시집보내면서 아홉 아들을 같이 보냈다. 순이 점잖고 성
실하게 생활하니 요의 딸들은 신분이 높아도 순의 가족에게 오만하지 않고 부녀자의 도리를 다했다. 이를 본 아홉 아들도 나날이 성실해졌다. 요는 순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순은 오전 五 戰을 마음에 새기고 실천하니 이를 따르는 백성이 널리 교화되었다.
요는 국정 경험을 쌓게 하려고 순에 백관의 일을 총괄하는 중책을 맡겨
다. 그러자 나랏일 모두가 질서정연해졌다. 또 산림과 하천, 연못을 관리
하는 직책을 맡겼더니, 폭풍과 뇌우 속에서도 순은 한 번도 일을 그르치지 않았다. 이를 모두 지켜본 요는 순을 등용한 지 20년이 지나자 드디어 중 대 결심을 한다. “순아, 이제 네가 내 뒤를 이어 임금이 되어라.” “아닙니다. 왕이시여! 저는 아직 부족한 것이 많은 사람입니다. 명을 거둬 | 주십시오.” 순이 극구 사양했으므로 요는 한발 물러서 그에게 털격판담치정을 맡긴다. 순이 섭 | 정한 지 8년 만에 요는 세상을 떠났다. 순은 요의 삼년상을 마치자 요의 아
“옛날, 우를 하늘에 천거한 지 17년 만에 순이 붕어하자 우는 삼년상을 마치고는 왕위를 받지 않으려고 순의 아들을 피해 양성에 숨었다. 그러나 천하 백성은 모두 우를 따랐다. 마치 요가 붕어했을 때 요의 아들을 따르지 않고 순을 따른 것과 같았다. 그러나 오가 익을 하늘에 천거하고 7년 뒤 중 어하자 익은 삼년상을 마친 뒤 우의 아들을 피해 기산 북쪽으로 숨었지만,
조회와 송사를 맡은 신하들이 이에게 가지 않고 모두 우의 아들 계에 가서, ‘우리 임금님의 아드님이시다’ 하고 노래를 불렀다.”
요순으로 이어지는 이 삼대는 중국 고대 문명의 최전성기였다. 이들이 태
평성대를 구가했던 것은 훌륭한 후계자를 뽑았기 때문이었다. 아들이 아니고 다른 사람에게 제위를 물려줄 정도의 그릇과 안목에 사심이 끼어들 자리는 없었다. 사심이 없다 함은 천하가 내 것이 아니고 모두의 것이라는,
즉 천하위공天下爲公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공자는 일찍이 이렇듯 천하 위 공을 실현한 이상 사회로 돌아가자고 주장
했다. 이는 단순한 복고가 아니라 현재의 무질서를 바라보는 탄식이고 미
레를 품은 희망의 메시지였다. 『예기』, 「예운 편에는 공자의 이러한 뜻이
잘 나타나 있다.
어느 날 탄식하는 공자에게 제자 언언 자유라고도 함이 다가와 물었다.
“무엇을 그리 탄식하십니까?”
그러자 공자가 대답한다. “오래전 대도 大道가 이뤄진 일과 하은 주 3대의 성군이 때를 만나 도를 행 한 일을 내가 직접 볼 수는 없었으나, 그 기록에 따르면 대도가 이뤄진 세상에는 천하가 모두 만민의 것이라 하였다.
무엇이 태평성대인가
함포 교복 含哺鼓腹 부른 배를 두드린다.
공자의 사상이 복고주의라며 애써 깎아내리는 사람들이 있다. 여기서 말
하는 복고 復古란 과거로의 맹목적 회귀를 뜻한다. 공자가 추구한 이상향이
과거 성군이 다스렸던 나라였기에 이런 누명을 쓸 수도 있겠다. 그러나 공 자사 상을 집대성한 『논어』를 읽어보면 함부로 복고주의라 깎아내릴 수 업
지 않나 싶다.